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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계곡·하천정비사업으로 불법시설 철거
색다른 음식에 예쁜카페 즐비한 장흥관광지
양평·가평 휘감은 어비계곡에 포천 백운계곡도

[이데일리 정재훈 기자] 그동안 목 좋은 계곡이면 어김없이 불법시설이 점령했던 경기도의 계곡이 이제는 완전히 싹 바뀌었다.

이재명 지사가 취임한 이후 추진한 ‘청정계곡·하천복원사업’ 덕에 경기도의 계곡이 도민들에게 온전하게 돌아왔다. 경기관광공사는 불법이 사라지고 자연이 되살아나면서 도민들의 휴식처로 재탄생한 경기도의 대표적인 계곡을 소개했다.

(사진=양주시)
(사진=양주시)

미술관·카페 품은 양주 석현천…장흥·일영관광지는 덤

서울에서 가까운 석현천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을 흐르는 하천으로 일영계곡 입구에서 한강을 향해 나아가는 공릉천과 합류한다.파워볼실시간

석현천의 상류 계곡은 ‘장흥관광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으며 장흥관광지는 개명산(565m)을 정점으로 왼쪽의 황새봉 및 앵무봉과 오른쪽의 일영봉 사이로 석현천이 흐르고 있는 계곡 중심의 구릉지다.

석현천 지류를 따라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있으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주변으로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미술관 근처에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손과 발을 계곡에 담구며 소풍하기 좋은 곳도 있다.

이 외에 석현천 상류 계곡을 따라서 자리한 식당과 예쁜 카페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석현천의 상류에는 장욱진미술관을 비롯해 조각공원과 가나아트파크, 송암스페이스센터 송암천문대, 권율장군묘, 장흥자생수목원 등 볼거리가 많다.

(사진=가평군)
(사진=가평군)

양평에서 시작해 가평까지 이어지는 어비계곡

어비계곡은 양평군 옥천면에서 시작, 약 3㎞를 흘러 가평 설악면에 이른다.파워볼사이트

어비(漁飛)는 예로부터 홍수 때 물고기가 산을 뛰어넘었다 하여 붙인 이름으로 어비산이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에 있어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면 일대가 잠겨 계곡 속에 갇혀 있던 물고기들이 어비산을 넘어 본류인 한강으로 돌아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어비계곡과 유명산계곡이 만나는 곳에는 어비계곡을 따라 여러 캠핑장과 산장이 들어서 있다.

어비계곡 입구에 위치한 문화마을에는 평소에 주민들이 하천을 깨끗하게 관리해 물이 맑다. 시원한 계곡물에서 송어와 산천어, 메기 등을 만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사진=포천시)
(사진=포천시)

경기북부 계곡복원사업 대표, 포천 백운계곡

백운계곡은 여러 계곡이 있는 포천에서도 청정한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으로 유명하다.네임드파워볼

길이가 약 10㎞에 달하는 백운계곡은 기암괴석으로 가득해 이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물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고, 수량이 풍부한 것은 물론 작은 소와 폭포가 여럿 있다.

여기에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더해지면 백운계곡은 평화로운 숲의 극치를 보여준다.

백운계곡 주변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운치있는 곳이 많다. 차를 주차하고 백운계곡의 가을을 맛볼 수 있다. 백운계곡 입구에서 광덕고개로 이어지는 도로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줘 드라이브하기에도 좋고 광덕고개 정상에는 쉼터와 카페, 작은 공원도 있어 잠시 차를 세우고 산길을 걸어보는 것도 백운계곡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정재훈 (hoony@edaily.co.kr)

검찰에 공정한 수사 촉구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국민의힘은 10일 여권 인사들의 연루 의혹이 불거진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건을 권력형 비리로 규정하며 검찰에 공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김예령 대변인은 서면 논평에서 “검찰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는 물론 수사팀 독립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은 결정적 증거와 진술을 파악하고도 이를 조용히 뭉갰다”며 “청와대가 개입한 울산시장 선거 등 권력형 비리 게이트가 이어지는데도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리의 악취가 진동하는 문재인 정권의 거대한 권력형 비리의 실상은 마치 범죄 영화를 보는 듯하다”며 “검찰이 공익의 대표자로서 부패를 척결하고 인권을 바로 세워야 할 기본 사명과 역할을 되뇌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교수는 페이스북 글에서 “문재인 정부도 측근 실세가 연루된 권력형 게이트의 문이 열리는 모습”이라며 “최순실 태블릿 PC가 탄핵까지 이어진 것처럼 어디까지 갈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예령 대변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민의힘 김예령 대변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hanjh@yna.co.kr

서울 방향 정체 오후 5~6시 최대, 오후 8~9시 해소
지방 방향 비교적 원활..서울→부산 4시간30분

추석연휴 첫날인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IC인근에서 바라본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오른쪽)이 정체를 빚고 있다. 2020.9.30/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추석연휴 첫날인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IC인근에서 바라본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오른쪽)이 정체를 빚고 있다. 2020.9.30/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한글날 연휴’ 둘째 날이자 토요일인 10일 서울 방향 교통량이 평소 주말보다 혼잡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날(10일) 전국 고속도로 차량이 452만대며, 이중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향하는 41만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보했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빠져나오는 차량은 44만대로 예상된다.

강원권 노선 일부 구간을 제외한 지방 방향은 비교적 원활하겠다. 반면 영동선과 서울양양선을 비롯한 강원도 노선을 중심으로 서울 방향 교통이 혼잡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방에서 서울로 향하는 상행선 정체는 오전 10~11시쯤 시작돼 오후 5~6시쯤 절정에 달했다가 오후 8~9시쯤 풀릴 것으로 보인다.

경부선 서울방향은 양재 부근~반포 4㎞ 구간, 수원 부근~수원 3㎞ 구간에서 차들이 거북이 운행을 이어가고 있다. 경부선 부산방향은 한남~서초 4㎞ 구간 교통이 정체되고 있다.

오전 10시 요금소 출발 기준, 승용차로 서울에서 각 지방 주요도시까지 걸리는 시간은 Δ부산 4시간30분 Δ울산 4시간10분 Δ강릉 2시간56분 Δ양양 1시간52분(남양주 출발) Δ대전 1시간51분 Δ광주 3시간21분 Δ목포 3시간49분 Δ대구 3시간30분이다.

각 지방 주요도시에서 서울까지 걸리는 시간은 Δ부산 4시간50분 Δ울산 4시간30분 Δ강릉 3시간50분 Δ양양 2시간20분(남양주 도착) Δ대전 1시간45분 Δ광주 3시간35분 Δ목포 4시간50분 Δ대구 3시간50분이다.

mrlee@news1.kr

[광장 봉쇄] 광화문 이번엔 ‘펜스 장벽’

“회사 출근은 해야 할 거 아니에요.”

한글날인 9일 오전 10시 50분쯤, 서울 광화문 인근 지하철 출구 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였다. 30대 여성 한 명 앞을 경찰관 7명이 막고 서서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경찰이 도심 내 직장 근무자임을 증명하라며 그 여성에게 “사원증 같은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하자, 여성이 “가져오지 않았다”고 대답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여성은 “여기서 200여m 떨어진 변호사 회관 뒤편에 회사가 있다. 집회가 아니라 회사에 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경찰은 “통제 중이라 지나갈 수 없다”고 제지했다. 그리고는 “차벽을 지나 크게 돌라”며 1㎞ 정도인 우회 루트를 안내했다. 여성은 “회사가 저 앞인데 왜 그렇게 멀리 돌아가라는 것이냐”며 항의했다. 3분여간 승강이 끝에 결국 여자 경찰관이 “제가 회사까지 안내하겠다”며 그 여성을 이끌었다. 여성은 경찰을 따라가면서도 분이 안 풀리는 듯 “출근은 해야 할 거 아니에요!”라고 소리쳤다.

사진 / 한글날인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차벽과 펜스가 설치되어 있는 가운데 세종대왕 동상 인근에서 경찰들이 근무를 서고 있다. 2020.10.9. / 고운호 기자
사진 / 한글날인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차벽과 펜스가 설치되어 있는 가운데 세종대왕 동상 인근에서 경찰들이 근무를 서고 있다. 2020.10.9. / 고운호 기자

이날 서울 광화문 세종로 일대는 이른바 ‘재인 산성’으로 둘러싸였다. 경찰은 광장 일대 도로변에 버스 500여 대로 촘촘히 차벽(車壁)을 쳤고, 인도는 철제 펜스 1만여 개로 아예 틀어막거나 꼬불꼬불 미로(迷路)식 통행로를 만들어 놨다. 그나마도 이를 지나려는 사람에겐 어김없이 경찰이 막아서서 “무슨 용건이냐”며 신분증을 요구했다. 군사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대학가 불심검문이 그대로 재현됐다. 그러나 그때도 인도를 철제 펜스로 막고 미로를 만들어 놓지는 않았다.

한글날 광화문 일대 봉쇄를 경험한 한 외신 기자는 “평양의 군사 퍼레이드도 두 번 가봤는데 이런 건 처음 본다”고 했다.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를 운영하는 채드 오 캐롤(Chad O’ Carroll) 코리아리스크그룹 대표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점심을 먹으러 빵집에 가는데 경찰 검문을 4번 받았다”며 “지금 서울은 완전히 우스꽝스럽다(ridiculous)”고 했다. “미쳤다(insane)”고도 했다.

한글날, 펜스에 갇힌 세종대왕 - 한글날인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을 겹겹이 에워싼 철제 펜스 옆으로 마스크를 쓴 경찰관들이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상 근처로 접근하는 것이 금지됐다. 경찰은 이날 광화문광장 일대에 경찰관 1만2000명을 배치해 시민들의 통행을 제한했다. /장련성 기자
한글날, 펜스에 갇힌 세종대왕 – 한글날인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을 겹겹이 에워싼 철제 펜스 옆으로 마스크를 쓴 경찰관들이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상 근처로 접근하는 것이 금지됐다. 경찰은 이날 광화문광장 일대에 경찰관 1만2000명을 배치해 시민들의 통행을 제한했다. /장련성 기자

경찰은 “세종로 일대는 차벽으로 차단했지만 개천절 때와는 달리 광화문 광장까지 이중으로 차벽으로 둘러싸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광장으로 접근하는 모든 통로 출입구를 막았고, 버스 대신 철제 펜스로 광장을 둘러싼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글날, 시민들이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광장 중앙의 세종대왕상이 유난히 덩그렇게 보였다.

시내 곳곳에선 시민들이 경찰과 마찰을 빚었다. 오후 1시 55분쯤 종로구 새문안교회 앞에서는 40대 남성이 경찰을 향해 “건너편 교보빌딩 사무실에 가야 하는데 왜 못 가게 막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경찰이 “셔틀버스를 타지 않으면 반대 방향으로 건너갈 수 없다”고 안내했다. 경찰은 이날 종로~율곡로 구간을 오가는 셔틀버스 4대를 배치해 운영했다. 이 남성은 “걸어가면 5분인데 셔틀버스를 왜 타야 하느냐”며 “밀폐된 공간인 버스가 더 위험한데 진짜 방역을 위한 것이 맞느냐”고 반문했다.

광화문역도 통제 - 한글날인 9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출구 중 광화문광장 방향 출입구 7곳이 폐쇄됐다. /연합뉴스
광화문역도 통제 – 한글날인 9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출구 중 광화문광장 방향 출입구 7곳이 폐쇄됐다. /연합뉴스

이날 경찰관에게 통행을 제지당한 시민들은 “광장을 봉쇄하고 통행을 차단한 것이 진짜 코로나 방역 때문이 맞느냐”고 의문을 표시했다. 실제로 이날 오후 3시쯤 광화문 전철역에서 100m 남짓 떨어진 S타워 지상 주차장에선 출연자와 스태프 50여 명이 드라마 ‘스타트업’ 촬영에 한창이었다. 이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는 집회를 차단하는 것”이라며 “드라마 촬영이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되면 서울시에서 규제나 방역 지도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광화문 봉쇄의 목적이 코로나 방역에 있다기보다는 오로지 집회 자체를 차단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인근 상인들은 “손님이 오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광화문에서 쌀국수집을 운영하는 전지은 점장은 “매장 테이블이 50개가 넘는데 오늘 손님 1팀 받아서 5만원어치밖에 못 팔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쯤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앞에서는 7명이 ‘정치방역·서민경제 파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앞을 경찰관 30여 명이 막아섰다. 참가자들은 회견을 마치고 “정치 방역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카라바흐’ 차지하기 위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교전영토 분쟁 속에 녹아 있는 종교·민족·역사 전쟁

(시사저널=오은경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나고르노 카라바흐(Nagorno -Karabakh) 지역에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분쟁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아제르바이잔의 제2 도시 간자(Gnc)에까지 폭격이 이뤄졌고, 열흘이 되도록 사태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부상자를 포함한 수천 명의 양국 인명 피해가 보도되고 있어, 보다 못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내 민스크그룹(나고르노 카라바흐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 의장국인 러시아·프랑스·미국이 중재를 시도했지만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양측 모두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우리 땅”이라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십자군 전쟁’을 표방하며 종교와 문화적 공감대가 있는 서구인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고대 기독교와 아르메니아 민족의 뿌리가 나고르노 카라바흐(이하 카르바흐) 땅에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역사 복원이라는 숭고한 민족적  과업으로 전쟁을 미화하기도 한다. 카라바흐가 아르메니아인에게 그토록 중요한 민족적 성지(聖地)라면, 어떤 이유로 지금 국제법상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영토가 된 것일까? 그리고 국제법상 명백히 아제르바이잔 영토인 카라바흐에 현재 80% 이상이 아르메니아인들로 채워진 원인은 무엇일까?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이 풀리지 않는 이 불행하고 비극적인 분쟁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카라바흐는 25만~30만 년 전에 살았던 인류의 턱뼈가 발견됐을 정도로 인류 문명의 역사가 오랜 곳이다. ‘거대한 정원’이라는 뜻의 투르크어 ‘카라바흐(Qaraba)’가 공식적인 지명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7세기부터로 알려져 있다. ‘나고르노’라는 수식어는 산악 지역임을 뜻하는 러시아식 표기다.

아르메니아군 병사들이 카라바흐 지역의 전선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을 향해 야포를 쏘고 있다. 아르메니아 국방부가 10월4일(현지시간)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배포한 사진 ⓒAP연합
아르메니아군 병사들이 카라바흐 지역의 전선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을 향해 야포를 쏘고 있다. 아르메니아 국방부가 10월4일(현지시간)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배포한 사진 ⓒAP연합

‘무슬림 기피’ 러시아, 기독교인 이주시켜

본격적으로 카라바흐에 아르메니아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부터다. 1805년 ‘퀴렉차이 조약’으로 카라바흐 왕조(Karabakh Khanate)의 통치권을 넘겨받은 러시아제국은 1813년 이란과 ‘귈뤼스탄 조약’을 체결해 현재의 아제르바이잔 영토를 넘겨받는다. 곧이어 1828년 강화조약 ‘투르크만차이 조약’을 체결한다. 러시아제국은 이 조약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이란에서 카라바흐를 포함한 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이주할 수 있도록 법적·정치적 제도를 보장해 주었다. 이란과 오스만제국 등 무슬림 인구와 국경을 맞대는 것에 대한 불안감 해소가 목적이었다. 러시아제국은 기독교 인구를 정착시켜 보호막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카라바흐에 아르메니아인의 본격적인 정착이 이뤄진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불행한 학살과 포그롬(러시아의 소수민족 박해)에 대한 러시아의 역사는 ‘아르메니아-타타르 전쟁'(1905~06)이라 불리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가시화된다. 이른바 아나톨리아에서 이주해 온 40만 아르메니아인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카라바흐에 거주하던 아제르바이잔인들을 집단학살한 사건이었다. 이처럼 피비린내 나는 비극적 역사를 뒤로하고 아제르바이잔은 1918년 민주공화국을 수립했고, 카라바흐는 여기에 귀속된다. 1922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모두 소련연방국이 되는 시점까지도 폭동과 서로에 대한 학살은 이어진다.

소련 체제에서 카라바흐도 아제르바이잔 사회주의공화국 자치구로 편입되지만 아르메니아는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카라바흐의 영토 분쟁이 심각한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카라바흐의 분리를 요구하는 아르메니아 이주민들의 지속적인 시위로 모스크바는 카라바흐 자치지역을 아제르바이잔에서 분리시키려고 했지만, 이는 곧바로 아제르바이잔에 의해 저지된다. 1989년 12월1일 아르메니아는 카라바흐와 아르메니아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법률을 채택한다. 이를 모스크바가 눈감아주면서 상황은 악화된다.

설상가상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끄는 소련 지도부가 1990년 1월 이른바 ‘검은 1월(Black January)’이라고 불리는 잔혹사의 주범이 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자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적 책임을 무시하고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최신 기술과 무기로 무장한 대규모 무장군인을 풀어 피비린내 나는 학살극을 벌인 것이다. 1월19일에서 20일로 넘어가는 날 밤이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157명이 사망하고 700명이 부상당했다. ‘검은 1월’ 사건은 소련이 해체되는 데 결정적인 불씨가 됐을 정도로 소련연방 전역에 미친 부정적 영향이 대단했다.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무력충돌을 야기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무력충돌을 야기한 나고르노-카라바흐

‘불법 점령’ 아르메니아, 서구 지원 등에 업어

1991년 결국 소련은 해체됐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모두 독립국이 됐다. 아제르바이잔은 곧바로 본국에 자치지역으로 귀속됐던 카라바흐의 자치권을 폐지했다. 그러자 한 달 후 카라바흐는 국민투표를 통해 아제르바이잔에서의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유엔 회원국 그 어느 나라도 공식적으로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르메니아조차도 독립을 인정하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었다. 독립을 인정하는 순간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전쟁으로 대략 3만 명 정도의 사망자와 100만 명 정도의 실향민·난민이 발생했다. 1994년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7월에도 국경 지역(토부즈)에서 충돌했고, 지금 카라바흐 지역에서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카라바흐 충돌은 국제법상 모두 아제르바이잔 영토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내전’에 속한다. 따라서 아르메니아에 군사기지를 두고 무기 공급을 해 왔던 러시아라 해도 아르메니아 군대를 지원할 명분이 없다. 그런데 최근 아르메니아군은 카라바흐에서 멀리 떨어진 간자에 폭격을 가함으로써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집단안보조약기구(소련연방 내 국가들의 군사협력체)의 지원을 유도하기도 했다. 국제전으로 번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위험한 행동이다.

아르메니아 입장에서는 카라바흐가 자국과 공식적으로 통합되지 못할 바에야 현재와 같이 국제법상 ‘불법 점령’이라 하더라도 현 상태 유지가 최선인 셈이다. 아르메니아는 카라바흐가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인의 역사적 고향이며 실효 지배하고 있다는 점 등을 내세워 국제 여론을 형성하며 국제사회의 상당한 동조와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군사력이나 경제력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경우에는 전면전을 통해서라도 카라바흐에서 아르메니아 군대를 철수시키고 영토를 보장받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최근 벌어진 전면전을 통해 카라바흐 주변 아르메니아가 점령했던 지역을 상당 부분 탈환했다. 그러나 이미 200년 동안이나 얽히고설킨 포그놈과 전쟁의 역사 실타래를 풀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카라바흐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종교·민족·역사 전쟁은 비단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주변 강대국들의 이권과 패권싸움 또한 여기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풀리지 않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버렸던 알렉산드로스의 지혜는 무엇일지 국제사회가 다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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